신예슬과의 대화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전통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을 썼고, 종종 기획자, 드라마터그, 편집자로 일한다.『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대화록의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예슬

보통 직함을 써낼 때는 음악 비평가라고 하는데요, 꼭 비평만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음악에 관한 글을 주로 쓰지만,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팀에서 일하거나 크고 작은 공연에서 드라마터그로 일하기도 해요. 많은 프리랜서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열린 2022-2023 타이포잔치 사이사이에서 비평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강연에서의 좋은 기억으로 작가님을 꾸준히 팔로잉하게 되었고, 연구하시는 분야와 관련해 다방면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화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질문으로, 음악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와 이유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예슬

저는 원래 피아노 전공이었어요. 예술고등학교를 다녔어서 같은 반 친구들과 다름없이 피아노 입시곡을 매일 연습했는데, 갈수록 저는 현대음악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현대음악에 대한 글도 찾아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제 나름의 이해를 넓혀갔지만 정작 피아노과 입시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됐었죠. ‘그런 거 읽지 말고 브람스를 연습해야지!’라며 혼나기도 했고요.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가 늘 답답했던 건 내가 연주하는 이 음악이 과연 무엇인지 저의 언어로 설명할 수가 없다는 거였어요. 피아노 음악은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좀 더 분명한 언어의 형태로, 지식의 차원에서 음악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음악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음악학에도 음악이론, 음향학, 도상학, 교육학 등 다양한 연구 분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음악 비평가로의 예슬님을 이해하면 그 중 미학과 비평에 관심과 애정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미학과 비평에 흥미를 느끼셨는지 비평가로서의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슬

맞아요. 미학이랑 비평을 가장 좋아했어요. 언어로 승부를 봐야 하는 분야인데 음악학의 다른 분과보다도 특히 자신의 질문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음악이론이나 음향학은 어떤 법칙이나 규칙을 찾고 그 원리를 추적하는 방향이라면, 미학과 비평은 그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 같아서 좋았죠.

비평가로서의 일은…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연장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서 공연 리뷰, 현장에 대한 비평들을 자주 찾아보곤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듣고 썼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봤는데 당시 서양음악계에서 나오는 글들이 제게는 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대부분 소회나 평가였고, 음악에 대해서 별로 질문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음악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배운 건 음악에 대한 자기 질문을 찾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거든요. 그런 걸 두루 살펴보면, 현장과 학계 둘 사이가 좀 이상하게 비어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음악 공연을 보고 제 질문을 찾아서 글로 써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혼자 글을 쓰고 블로그에도 올려보고 그랬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할 때쯤 평론상에 지원해서 상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는 글을 청탁받고 남들에게 글을 조금 더 분명히 공개하는 일이 시작됐어요. 비평가로서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저 혼자 궁금한 것만 다루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질문들을 다루는 방향으로 조금 더 관점을 넓히게 된 것 같아요.

비평가는 논리를 가지고 명확한 목소리를 내야하지만, 또 그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은 아닐지 고민하는 순간을 종종 겪을 것 같습니다. 직업적인 태도로서 유의하는 혹은 지향하는 비평가의 태도가 있을까요?

예슬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거짓말하지 않는 것…? 글을 쓰다가 그냥 손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왠지 이렇게 써야될 것 같고, 그냥 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순간이 있는데 제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쓰는 건지 잘 체크해야 하는 것 같아요. 틀린 말을 쓴다거나 누굴 속인다는 차원이 아니라, 제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믿는 것에 관해 써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걸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고 글에서 그걸 또렷하게 드러내기도 어렵더라고요.

두 번째는, 필자로서 제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저는 유럽 전통음악(소위 클래식)을 배워왔고, 이 장르가 음악문화 전반에서 선점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아카데미와 연결된 제도, 나라의 공공연한 지원, 세간의 인식 등. 거의 특혜를 받고 있는 장르라 생각하는데, 저도 이 음악문화에 제일 익숙하다 보니 이걸 계속 스스로 비판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은 앞의 두 이야기가 합쳐진 것 같은데… 유럽 전통음악에 대해 쓰더라도 제가 한평생 음악 공부한 독일 할아버지 거장인 것처럼 쓰지 않고, 제 정체성에 기반한 글을 쓰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 아카데미에서 서양음악을 공부한 분들은 아무래도 제일 많이 듣고 배운 게 유럽 거장 할아버지들의 말과 음악이라서 그걸 고스란히 따라가게 될 때가 많은데, 그건 어쨌든 제 경험도 아니고 제 관점도 아니라서 그걸 잘 걷어내는 게 필요했어요. 아무튼 제가 한국 서울에 사는 32살 여성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것을 주의하고 제 나름의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음악비평가 신예슬도 있지만, 기획자와 인터뷰어로서 타인과의 교류를 만들고, 입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행보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헤테로포니 집단을 구성한다거나, 함께 을 출간하거나, 〈김재훈의 P.N.O〉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하시는 등등, 이러한 상호작용 과정에 있어 예슬님의 욕망과 이러한 활동이 본인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예슬

저는 이제 더 이상 학자들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음악을 만들고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배우기로 했어요. 헤테로포니는 저의 또래 동료들이자 대부분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고, 저에게 이분들보다 더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신 분들이 없었죠. 비슷한 질문을 공유하면서 같이 대화를 나누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요즘은 각자의 생업이 바빠서 살짝 쉬고 있지만요. 또 이렇게 나름의 팀을 이루니까 웨이브나 옐로우펜클럽 같은 또 다른 필자/연구자 모임과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어요. 팀이라는 게 그 안에서 배우는 것도 크지만 또 다른 좋은 만남의 창구가 되어준다는 걸 실감했던 것 같아요.

<김재훈의 P.N.O>에서도 마찬가지로 연극인, 미술인, 매일같이 무대로 출근하시는 여러 감독님, 온갖 분야의 창작자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새로 만난 분들과 가까워지면서 그들 일상의 음악 경험이 어떤 것인지도 더 잘 알게 되고, 다양한 영역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사는 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죠. 가끔 집에서 스피커로만 혼자 음악 듣고 글을 쓰면 음악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혼자 뜬구름 잡으며 태평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러다 굉장히 활력적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할 때면 그런 막막함이 사라졌어요. 음악이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와서 유령처럼 떠도는 게 아니라 이렇게 땀 흘리며 열심히 만들어 내는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라는 걸 몸소 느끼게 되어서 좋았고, 또 현장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조금 뿌듯했어요. 무대의 상수와 하수가 어딘지 알게 되고, 케이블 감는 법도 알게 되고, 무대감독님이 큐를 어떻게 주는지도 가까이에서 보고, 뭐 그런 것들이요. 혼자 글만 썼다면 여전히 잘 모르고 있었겠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창작자들의 경험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헤테로포니는 예슬님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집단인 것 같아요. 헤테로포니 소개에 적으신 소개글에 따르면, “다른 장르의 동료 비평가들과 ‘음악’이라는 공통분모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서로 다른 영역의 대변자로서 가시화되지 않았던 음악들 사이의 흥미로운 차이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많은 대화와 세 권의 출간이 이루어졌는데요, 헤테로포니와의 시간은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예슬

맨날 글을 혼자 쓰다 보면 쓸쓸하더라고요. 이게 도대체 타인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다 헤테로포니 친구들을 만난 뒤로는 고립감도 한층 줄어들었고,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새로운 사고방식도 배울 수 있었어요. 언젠가 ‘함께 듣고 쓰기’라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같은 음악을 듣고 각자 다른 글을 써봤던 적도 있는데 서로 꽤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그런 경험도 재밌었어요. 각자가 음악에 궁금해하는 것, 문제의식, 관심 방향 모두 다 다르니까요. 대단한 대의를 품고 헤테로포니를 시작한 건 아니었고, 그냥 같이 글 쓰고, 공연 보고, 서로 글에 피드백도 주고, 파이팅 하고… 그런 친구를 찾고 싶어서 시작했고 그렇게 같이 뭘 해보는 시간이 저에게 재미도 주고 힘도 줬던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더 예슬 님의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 예슬님은 평소 하루의 여유시간이 있으시다면, 어떤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보내시나요?

예슬

저는 술을 좋아해요. 주종을 가리지 않는 애주가랍니다. 좀 다양하게 마시고 싶을 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여러 종류의 술을 펼쳐놓고 비교 시음하며 마시기도 해요. 이외에는 가끔 농구장에 가는데 ‘농구’를 한다고 말은 못 하겠고… 슛 연습을 종종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본다면, 현재 예슬 님의 모습은 음악학을 전공했던 학부시절로부터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도 현재의 모습을 꿈꾸셨을까요? 어떤 성격의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예슬

고등학교 때는 나이가 들면 광화문에 출근하는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대학생 때, 음대를 나와서는 광화문에 취직은 할 수 없구나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까지 빡센 프리랜서로 살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조금 구체적으로 꿈꿨던 모습이 있긴 했요. 부암동에 가면 동네 아트홀이 하나 있는데요, 조금만 더 허름해지면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나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낡고 작은 곳이에요. 그런 데 취직해서 청소부터 기획까지 나 혼자 다 하면 마음 편하고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아니면 잡지사에 취직해서 기자 생활을 하는 것도 생각을 했는데, 딱히 또 여기다 싶은 곳은 없었고요. 그렇지만 취직을 안한 건 참 다행이에요. 성격상 영혼 바쳐 몸 바쳐 일하고 앓아누웠을 것 같아서, 지금 정도로 너무 하나에 몰입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생활패턴이 딱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에는 음악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영화 동아리였는데 거기서 거의 4-5년 내리 활동하면서 영화를 계속 봤어요. 영화 보는 동아리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영화 만들기도 하는 동아리여서 촬영 많이 하고, 붐마이크 잡고, 연기 시키면 가끔 연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음악과 본인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예슬

이제는 살짝 지겨운 친한 친구 같아요. 만나면 늘 좋고 편안하지만 가끔은 지겹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근데 이것도 음악마다 다르니까, 좀 다른 장르의 일들을 더 보려고 하고, 새로운 아티스트들 찾고, 예전엔 듣기만 했다면 이제는 같이 일을 벌여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영역과 역할을 바꿔가면서 또 재미를 느껴보려고도 해요.

예전엔 음악 안에 제 생활이 전부 다 들어있던 것 같아요. 음악도 최대한 많이 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뜨는 시간이 생겼다 하면 음악 관련 텍스트를 읽거나 신보를 찾았는데 그러다 보니 마음도 초조하고 생활도 영 좋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언젠가 피아니스트 김다솔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음악마저 제 삶에 침범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멋있어서 저도 그걸 따르기로 결심했죠. 그래서 음악은 내 생활을 뒤덮는 뭔가가 아니라 나의 친한 친구인 정도로 거리를 뒀어요. 지금 딱 좋은 것 같아요.

현재 가장 해보고 싶은 일 혹은 다음 단계의 목표가 있으실까요?

예슬

다음 책을 내는 거예요. 약속한 책이 두 권 있는데 아직 하나도 제대로 준비가 안 끝나서, 일단은 이걸 제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리고 음악 말고 아예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 보고 있어요. 농사? 가능하면 토마토나 감자였으면 좋겠는데 식물도 잘 못 키워서 그냥 상상만 할 뿐이고요… 근데 술은 가끔 진짜로 만들어요. 양조사 친구네 놀러가서 가끔 같이 술을 만드는데, 완전히 다른 감각을 쓰는 일을 하니까 환기도 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음악이랑 완전 상반된 일을 하나 찾는 중이에요.

대화록은 주로 3학년의 예비 시각 디자이너 학생들이 읽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과 동행하는 예슬님처럼 디자인과의 동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예슬

저는 시각에 재능이 없어서 언제나 디자이너 손 붙잡고 사는 사람인데요. 디자이너들은 너무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시각 언어를 다루는 많은 분들 중, 디자이너만큼 세상을 실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을 저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계속 멋있게 잘해주시라. 짱이다. 힘내세요. 파이팅. 존경합니다.